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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성녀 클라라 축일 기념 만찬2026-09-0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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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KakaoTalk_Photo_2026-09-01-11-01-37 003.jpeg (258.2KB)매튜주교님강연.pdf (214.7KB)

지난 8월 27일 목요일 오후 5시 30분, Pacific Corinthian Yacht Club에서 성녀 클라라 축일 기념 만찬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날 클라라 성당에서는 저희 본당을 1번 테이블로 배정하며 따뜻하게 환대해 주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만찬 후에는 LA 대교구 보좌주교 Matthew G. Elshoff 주교님의 「그리스도의 얼굴을 비추는 두 개의 거울,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라는 주제의 특별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주교님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설교와 봉사로, 클라라 성녀가 기도와 관상으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추었다고 전했습니다.

 

<Matthew G. Elshoff 주교님을 소개하는 산타클라라 성당의 존 러브 신부님>​​​​​​

 

 

이번 만찬에 우리 본당에서는 주임신부님을 비롯해 정 대건안드레아, 이 보니파시오, 이 마리아, 하 프란치스코, 김 마리안나 윤 알베르또, 김 아우스딩, 윤 앤디 교우가 참석하여 성녀 클라라의 삶과 영성을 되새기며 신앙 안에서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아래는 LA 대교구 보좌주교 Matthew G. Elshoff 주교님의 「그리스도의 얼굴을 비추는 두 개의 거울,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라는 주제의 특별 강연 전문입니다.

 

 

여러분, 좋은 저녁입니다.

제가 오늘 얼마나 오래 이야기할 거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습니다. 그래서 헨리 8세가 자기 아내들에게 했다는 말을 빌려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보, 당신을 오래 붙잡아 두지는 않을 거요.”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존 신부님(Father John),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프란치스코 성인과 클라라 성녀는 제 마음에 매우 소중한 분들입니다. 제가 카푸친 프란치스코회 수사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을 생각하면, 오늘과 같은 기회는 이 두 인물이 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자신들이 살았던 한 시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바로 그 시대를 변화시킨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비추는 두 개의 거울,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입니다. 지금 우리는 프란치스코회 희년(Franciscan Jubilee Year)을 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인물을 다시 한번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역사 속에서 차지한 위치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단지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세속의 역사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문자 그대로 수많은 영역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개개인의 삶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문명과 사회, 심지어 통치와 정부의 모습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활동적인 성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클라라 성녀는 그를 충실히 따랐던 추종자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매우 불완전합니다. 클라라는 단순히 프란치스코의 제자였던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프란치스코의 영적인 짝이 되었고, 그의 거울이 되었으며, 복음 안에서 그의 자매가 되었습니다. 만일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아시시를 처음 밝힌 태양이었다면, 클라라는 달이었습니다. 그녀는 그와 동일한 빛을 똑같이 아름답게, 그러나 더욱 온유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반사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함께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성덕에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성인들을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빚어 가십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같은 복음의 샘에서 마셨고, 같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으며, 같은 교회를 사랑했고, 같은 가난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이러한 이상을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삶 안에 구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다른 두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비추지만, 동시에 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세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무엇이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를 그토록 닮게 만들었는가?

둘째, 무엇이 두 사람을 그토록 서로 다르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우정과 영성으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하고도 근원적인 사랑(radical love)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radical’이라는 말은 그 단어의 원래 의미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 말은 바로 ‘뿌리(root)’를 뜻합니다. 프란치스코의 회심은 산 다미아노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면서 시작됩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나의 교회를 다시 세워라. 보다시피 교회가 무너져 가고 있다.”

처음에 프란치스코는 그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움브리아의 언덕 곳곳에 방치되고 황폐해진 작은 성당들을 실제로 다시 짓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직접 그 성당들을 고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나병 환자와의 만남을 경험하면서 그는 깨닫게 됩니다.

“아니다. 교회는 바로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무너진 삶을 다시 세워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클라라는 아시시에서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마음 안에서도 바로 그 동일한 부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근원적이고 철저한 사랑으로 하나 되는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영화 《Brother Sun, Sister Moon》(형제인 태양, 자매인 달)을 보셨다면, 저는 그 영화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를 상당히 잘못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영화는 두 사람 사이에 마치 어떤 낭만적인 연애 관계가 있었던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프란치스코보다 약 12세에서 14세 정도 어렸습니다. 그리고 클라라가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처음 들었을 무렵, 프란치스코는 20대 중반이었고 클라라는 약 열두 살 정도였습니다.

클라라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집은 당시 아시시 사회에서도 상당히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녀의 가족이 살던 저택이 아시시 중심 광장 바로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라는 그곳의 광장에서 프란치스코가 설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유력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집안 남자들은 기사 계급에 속할 정도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프란치스코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단순히 좀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되라고 초대하시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온전히 당신께 내어 맡기고, 전적으로 당신의 사람이 되라고 부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에게 온전히 당신께 속하라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복음을 매우 문자 그대로, 매우 직접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그리고 두 사람은 이 말씀이 단지 옛날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역사적인 말씀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도 살아 있는 초대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혁명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고 응답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온 마음과 온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 드리고자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 그들이 살던 사회는 점점 더 상업, 부, 특권, 그리고 사회적 신분 상승에 의해 형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사회 한가운데에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신분과 지위에 집착하던 문화 속에서 그들은 겸손을 선택했습니다.

권력을 추구하던 세상 속에서 그들은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의 영성은 그 시대와 동떨어진 곳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살던 시대의 현실, 곧 상업, 부, 특권, 사회적 상승에 대한 열망이라는 구체적인 경험 한가운데에서 탄생했습니다.

 

당시 문화는 사회적 지위, 그리고 어떻게든 남보다 앞서 나가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기존의 봉건제도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권력은 귀족들과 기사 계급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는 주로 토지를 소유하고 농업 기반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신분을 뛰어넘어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상인과 수공업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중산계층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고, 그들이 점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아버지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Pietro di Bernardone) 역시 부유한 직물 상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의 아버지는 새롭게 부상하던 중산계층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계층의 등장은 단지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경제 구조를 바꾸어 놓게 됩니다. 이제 화폐, 무역, 은행업이 사회를 새롭게 재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도시의 성장은 상인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들, 과부들, 고아들, 병자들에게는 엄청난 가난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시가 성장할수록 가난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질병도 증가했고, 사회적 분열과 공동체의 해체도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영적인 단절과 소외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에서 동떨어져 있고, 거리가 있으며, 지나치게 위계적인 존재로 비쳐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영성이 그들이 살았던 사회의 바로 그 현실로부터, 그리고 당시 교회가 처해 있던 현실로부터 형성되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이 상인 계층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성장했던 세계는 사람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불안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만일 나의 가치가 내가 가진 돈의 액수에 달려 있다면, 나는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반대로, “내게 돈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상업과 경제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살았던 시대가 새롭게 만들어 낸 불안이었고, 그들 역시 그 문제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아주 단순한 하나의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다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를 이보다 더 깊이 하나로 묶어 준 주제는 없었습니다. 바로 이 단순한 한마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확신은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핵심 주제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됩니다.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가난(Holy Poverty)”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어느 한 여인을 구애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세상이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가장 고귀한 여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은 그가 돈도 많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젊은 시절 화려하고 낭만적인 삶을 좋아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네가 자꾸 이야기하는 그 가장 고귀한 여인이 누구냐?” “그녀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러자 마침내 프란치스코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밝혔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귀부인 가난(Lady Poverty)’이었습니다. 가난은 이제 프란치스코가 평생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랑하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가난은 자유였습니다. 가난은 그를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야망에서, 그리고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애착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렇게 프란치스코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 곧 ‘귀부인 가난’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귀부인 가난(Lady Poverty).’ 클라라도 바로 이와 같은 이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클라라는 가난을 너무나 확고하게 지키고자 했기 때문에, 교황에게 특별한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난의 특권(Privilege of Poverty)’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당시 다른 수도원들과 달리, 클라라는 자신의 공동체가 어떠한 재산도 소유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공동체가 재정적인 안전장치나 경제적 보장을 갖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성 수도자라면 기본적으로 봉쇄수도생활(cloistered life)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수녀들이 수도원 밖으로 나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병원에서 봉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아원을 세우는 형태의 활동수도생활(apostolic religious life)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형태의 여성 수도생활은 훨씬 후대인 17세기 후반과 18세기 무렵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당시 수도생활을 선택한 여성이라면 기본적으로 봉쇄수도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생활을 유지할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수도공동체들은 보통 수입원이 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토지를 소유했으며, 기부금이나 기금(endowments)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이런 것들을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예수님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급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실제로 클라라는 이 가난의 이상을 교황에게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바쳐야 했습니다. 클라라는 59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말하자면 자신의 평생 동안 교황을 설득해야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클라라는 교황으로부터 그 ‘가난의 특권’을 허락받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특권을 승인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것이 당시 얼마나 급진적인 일이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큰 권력, 더 많은 부, 더 확실한 보호와 안전을 가져다주는 특권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새롭게 성장하던 중산계층 역시 그런 특권과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녀가 원했던 특권은 더 많이 가지는 특권이 아니라, 더 적게 가지는 특권이었습니다. 클라라는 참된 안전이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데에 참된 안전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My God and my all).”

그리고 클라라는 그 말을 자신의 기도생활 안에서 날마다 실제로 살아냈습니다. 두 성인은 우리에게 가난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가난은 무엇보다도 먼저 소유물이 부족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느님을 너무나 온전히 소유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삶에서 부차적인 것이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은 단순히 무엇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너무나 충만하게 모시는 것,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이 자신의 삶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에게 공통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귀부인 가난(Lady Poverty)’이라는 모습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입니다.

 

두 성인 사이의 또 하나의 깊은 공통점은 성체성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심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성체성사에 대해 대단히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그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의 겸손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 숭고한 겸손이여!

오, 겸손한 숭고함이여!

우주의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토록 자신을 낮추시어 평범한 한 조각의 빵 안에 자신을 감추십니다.

자,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합시다.”

 

클라라 역시 이와 똑같은 사랑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클라라에 관해 가장 사랑받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적대적인 군인들이 산 다미아노 수도원을 위협했던 때를 전해 줍니다. 산 다미아노는 클라라가 살던 수도원이었고, 아시시의 성벽 밖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병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던 클라라는 성체를 자신에게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수도원의 문 앞에 섰습니다. 그 문은 ‘죽은 이들의 문(the door of the dead)’이라고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클라라는 그곳에 성광(montrance)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약탈을 일삼는 군인들이 수도원을 위협하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주님의 보호하심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성체성사의 선물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 결과 군인들은 물러갔습니다. 그들은 수도원을 공격하지 않았고, 아시시 시내로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삶에서 발견되는 매우 강력한 영적 교훈을 보여 줍니다. 곧, 성체성사는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했고, 실제로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체가 참으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경배했습니다. 그들의 힘은 그분 앞에서 드리는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의 용기는 그분과의 일치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쁨은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를 더 큰 신자 공동체와 하나로 묶어 주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교회였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프란치스코를 교회에 맞서 싸웠던 반항적인 인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가장 거리가 먼 이해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열정적으로 사랑했습니다. 교회의 약점과 부족함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교회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교황의 승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구의 주교가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에게 그 교구 안에서는 설교하지 말라고 명했다면, 프란치스코는 그 지역 주교에게 순명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시대의 위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비판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범을 통해 응답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반란을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복음을 너무나 철저하고 문자 그대로 살아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안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참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진실성과 설득력은 가난한 이들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들의 진실성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클라라 역시 똑같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클라라는 매우 강한 의지와 결단력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사명을 결코 교회와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성들을 위한 프란치스코적 수도생활의 형태를 두고 수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뜻과 목표를 교황과의 친교 안에서, 그리고 순명의 정신 안에서 추구했습니다.

 

두 성인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참된 개혁은 결코 교회를 떠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두 성인뿐 아니라 모든 성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참된 개혁은 결코 교회를 버리거나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참된 개혁은 교회를 떠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교회를 더욱 깊이 사랑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성인들은 언제나 교회 안에서, 교회의 내부로부터 교회를 새롭게 합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둘 다 예수님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지니고 있었지만, 각자 서로 다른 고유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영으로 하나 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성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본질적으로 사도적이고 선교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도시와 마을을 걸어 다니며 회개와 평화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나병 환자들을 껴안았고, 또한 먼 이국 땅까지 찾아갔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전쟁의 한복판에서 술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는 시골길을 다니며 노래했고, 말로만 설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밖으로 나아갔고, 활동적이었으며, 복음적이었고, 그리스도를 세상 속으로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클라라의 성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프란치스코가 여러 곳을 여행할 때, 클라라는 한곳에 머물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설교할 때, 클라라는 세상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기도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이탈리아 전역과 그 너머까지 여행하는 동안, 클라라는 수도생활의 대부분을 산 다미아노 수도원의 담장 안에서 보냈습니다.

클라라는 병약했기 때문에 종종 침상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영향력이 프란치스코보다 덜 중요했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클라라는 매우 깊은 영적 진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교회에는 선교사도 필요하고 관상가도 필요합니다. 교회에는 밖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필요하고, 기도 안에 머무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교회에는 활동도 필요하고 관상도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는 마르타들도 필요하고 마리아들도 필요합니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회 운동을 영적으로 떠받치는 기도하는 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자신을 지탱해 주는 기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봉쇄수도생활은 선교를 피해 물러나는 후퇴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봉쇄수도생활은 선교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라는 은사를 통해 프란치스코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두 발로 복음을 전했고, 클라라는 무릎을 꿇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드러냈고, 그리스도를 향한 동일한 불타는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강인함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강인함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군중 앞에 섰고, 사회의 분열과 정면으로 마주했으며, 자신이 받을 유산을 포기했고, 나병 환자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러나 클라라의 강인함은 훨씬 더 조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의 강인함은 결코 프란치스코보다 덜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여성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귀족 가문이 가하는 압력에 맞섰습니다. 부유한 집안과의 혼인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주님 수난 성지 주일(Palm Sunday) 밤의 어둠을 틈타 가족의 집을 몰래 빠져나와 프란치스코에게로 갔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우선 그녀를 베네딕도회 수녀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산 다미아노에 정착시켰습니다. 기사들이었던 그녀의 형제들은 클라라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거부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소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그녀는 신앙 안에서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정말로 매우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진 병고 속에서도 끝까지 견뎌 냈습니다.

그 기간 대부분을 침상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많은 이들이 좀 더 편안한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싶어 했을 때에도,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적 가난의 이상을 끝까지 지켜 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보여 준 것이 행동하는 용기였다면, 클라라가 보여 준 것은 끝까지 견디어 내는 용기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어떻게 담대하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클라라는 우리에게 어떻게 끝까지 충실하게 남아 인내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그리스도의 신비 가운데 서로 다른 측면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인간성에 특별히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는 강생의 신비를 사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성탄 구유 장면을 마련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224년 그레치오(Greccio)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구유 주변에 모이게 하고, 동물들도 함께 두어, 사람들이 그 장면을 바라보며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가난을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베들레헴에서 거룩한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의 가난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것을 직접 보고 싶어 했고, 또한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겸손을 실제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신비를 매우 직접적이고, 아주 생생하며 그림을 그리듯 표현했습니다.

클라라 역시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데 특별히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런데 클라라는 자신의 자매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권고합니다. 그녀는 자매들에게 마치 거울을 바라보듯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손에 들고, 마치 그것을 거울처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셋째로, 클라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관상하십시오.”

우리는 기도 안에서 침묵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 안에서 말씀하시도록 그분께 공간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클라라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십시오.” 왜냐하면 참된 제자직은 반드시 행동 안에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 열매는 바로 봉사와 사랑입니다. 그리고 클라라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 앞에 거울을 하나 두십시오.” 그 거울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그 거울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통하여 드러난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에 점점 자신을 닮게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강조했고, 클라라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접근은 서로를 완성해 줍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경쟁의 흔적도 없었고, 영향력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도 없었으며, 서로를 지배하려는 시도도 없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있었던 것은 오직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아 주는 관계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클라라에게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영감을 주었고, 클라라는 자신의 기도를 통해 프란치스코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클라라에게 길을 제시하고 방향을 안내해 주었다면,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에게 끝까지 충실하게 남아 있는 신실함의 선물을 보여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가 하느님께서 본래 바라셨던 모습으로 더욱 온전히 성장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말씀드리자면, 역사가들과 영성 작가들은 클라라를 종종 “프란치스코의 거울”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게 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클라라는 단순히 프란치스코를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둘 다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자 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설교와 봉사, 그리고 뜨거운 열정을 통해 그리스도를 비추었습니다. 클라라는 관상과 침묵, 그리고 끝까지 견디어 내는 충실함을 통해 그리스도를 비추었습니다. 마치 태양빛과 달빛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추었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보완하는 성소를 통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톨릭 신자인 우리는 이 두 성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먼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우리에게 성덕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프로그램도 중요하고, 구조도 중요하며, 전략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직접 만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분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둘째,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우리에게 집착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대부분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처럼 극단적인 물질적 가난으로 부름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내적인 가난(interior poverty)으로 들어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 내적 가난이란 자신이 가진 것을 지나치게 움켜쥐지 않고, 소유물을 가볍게 붙들며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해 주는 자유입니다.

셋째, 이 두 성인은 우리에게 모든 성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적인 지도자의 역할로 부름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르치고, 어떤 사람들은 봉사하며, 어떤 사람들은 사목과 여러 직무를 이끌어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로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조부모로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질병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을 조용히 견뎌 냅니다. 그러나 참된 모든 성소는 저마다 교회의 사명에 기여합니다.

넷째로, 특별히 클라라는 우리에게 육체적인 약함이 영적인 열매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다시 말합니다. 육체적인 약함이 영적인 풍요로움을 제한하지는 않습니다.

클라라는 자신의 생애 거의 절반을 질병의 짐을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영향력은 8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오늘 우리 앞에 두 친구로, 두 제자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로 서 있습니다. 그들은 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삶의 의미에 굶주려 있고, 안전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수많은 목소리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소셜미디어,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여러 걱정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이렇게 생각합니다. “충분하지 않다, 안전도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런 불안이 우리 시대를 끊임없이 사로잡고 있습니다.

정치적 수사와 논쟁,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목소리들까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우리를 다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돌아가도록 초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이 희년의 해에 클라라는 우리에게 자신의 삶과 증언을 통해 희망을 따라 살아갈 기회를 제시합니다.

 

희망은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희망은 단순한 세속적 가치도 아닙니다. 낙관주의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신앙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하고자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기쁨에 찬 봉사를 통해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클라라는 기도와 관상을 통해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분열로 얼룩진 세상에서 클라라는 우리에게 친교를 가르칩니다.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녀는 신뢰를 가르칩니다.

안전과 성공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그녀는 단순함을 가르칩니다.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녀는 관상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프란치스코회 희년을 지내는 동안, 클라라가 우리를 인도하도록 마음을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녀가 우리에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깊이 사랑하는 법을, 충실하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 희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라 참된 쇄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희망을 비추는 제자들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화를 세상에 비추는 제자들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